피앤피뉴스 - [세상의 창] 사지(四知)_정승열 법무사(대전)

  • 맑음영천7.1℃
  • 맑음동두천4.2℃
  • 맑음안동7.1℃
  • 흐림서귀포12.9℃
  • 맑음청주7.1℃
  • 맑음부안6.8℃
  • 맑음청송군5.4℃
  • 맑음정선군4.3℃
  • 맑음군산6.5℃
  • 맑음밀양9.2℃
  • 맑음성산10.4℃
  • 맑음의령군7.3℃
  • 구름조금춘천3.1℃
  • 맑음해남9.4℃
  • 맑음의성5.6℃
  • 맑음고창7.7℃
  • 맑음서산6.4℃
  • 맑음남해6.7℃
  • 흐림백령도7.0℃
  • 맑음울진9.3℃
  • 맑음거제6.4℃
  • 맑음태백4.4℃
  • 맑음대전6.8℃
  • 맑음인천5.1℃
  • 맑음장흥8.7℃
  • 맑음대구9.7℃
  • 맑음통영11.3℃
  • 맑음충주4.4℃
  • 맑음부여6.8℃
  • 맑음보은6.9℃
  • 맑음산청7.3℃
  • 맑음전주8.1℃
  • 맑음울릉도8.9℃
  • 맑음강진군9.4℃
  • 맑음포항10.4℃
  • 맑음문경4.8℃
  • 맑음진도군7.9℃
  • 맑음홍천2.3℃
  • 맑음창원9.1℃
  • 맑음강화2.8℃
  • 맑음광양시10.9℃
  • 맑음강릉8.6℃
  • 맑음서청주6.1℃
  • 맑음영덕8.7℃
  • 맑음거창7.6℃
  • 맑음완도8.4℃
  • 맑음부산11.2℃
  • 맑음원주3.9℃
  • 맑음추풍령6.6℃
  • 맑음광주10.0℃
  • 맑음홍성5.5℃
  • 맑음영광군6.8℃
  • 맑음울산10.1℃
  • 맑음영주4.2℃
  • 맑음파주4.5℃
  • 맑음속초6.9℃
  • 맑음보성군8.6℃
  • 맑음대관령2.6℃
  • 맑음흑산도6.8℃
  • 맑음금산5.7℃
  • 맑음고흥8.1℃
  • 맑음북부산10.7℃
  • 맑음목포8.0℃
  • 맑음봉화2.4℃
  • 맑음철원3.9℃
  • 맑음북창원10.7℃
  • 맑음북강릉5.7℃
  • 맑음임실7.4℃
  • 맑음동해8.3℃
  • 맑음김해시10.8℃
  • 맑음제천3.1℃
  • 맑음순창군7.1℃
  • 맑음경주시8.3℃
  • 맑음상주8.3℃
  • 맑음북춘천2.5℃
  • 맑음장수5.2℃
  • 맑음서울6.3℃
  • 맑음함양군8.0℃
  • 맑음진주7.5℃
  • 맑음수원6.4℃
  • 맑음고산10.5℃
  • 맑음양산시10.7℃
  • 맑음이천2.9℃
  • 맑음합천9.1℃
  • 맑음양평3.9℃
  • 맑음고창군7.8℃
  • 맑음정읍7.3℃
  • 맑음영월3.2℃
  • 구름조금인제2.1℃
  • 맑음남원9.3℃
  • 맑음천안6.6℃
  • 맑음여수10.6℃
  • 맑음세종5.9℃
  • 맑음구미6.2℃
  • 맑음제주10.9℃
  • 맑음보령6.6℃
  • 맑음순천7.0℃

[세상의 창] 사지(四知)_정승열 법무사(대전)

이선용 / 기사승인 : 2022-06-27 11:29:00
  • -
  • +
  • 인쇄

정승열 법무사.jpg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62세)와 2대 명제(48세)를 제외하고, 후한의 황제들은 수명이 매우 짧았다. 88년 3대 장제(章帝: 75~88)가 34세로 죽은 뒤, 장제의 서자인 유조(劉肇)가 9세 때 4대 화제(和帝: 88~105)로 즉위하면서부터 그랬다. 장제의 두황후(竇皇后)는 유조의 생모 양귀인(梁貴人)을 독살하고 자신이 수렴청정했다. 화제가 친정을 하면서 모후가 추천해준 황후 음씨를 폐하고, 등씨(鄧氏)를 황후로 삼았다.

 

하지만, 불과 3년만인 105년 화제가 27세로 요절하자, 등 황후는 직계도 아닌 민간에서 기르던 생후 100여 일밖에 안 되는 갓난아기 유융(劉隆)을 상제(殤帝: 105~106)로 즉위시켰다.

나이 어린 황제가 요절하면 그 뒤를 잇는 황자는 더욱 어리게 마련인데, 그나마 화제부터 직계가 단절되고 방계에서 황위를 잇게 되면서 황제권은 허울이 되었다. 그러나 갓난아기인 상제도 열 달만인 다음 해에 요절하니, 등 황후는 청하왕(淸河王) 유경(劉慶)의 아들 유호(劉祜: 94~125)를 안제(安帝: 106∼125)로 세웠다. 13살에 즉위한 안제는 18년 만에 죽었는데, 친정하면서 자신을 옹립한 등 태후의 일족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그의 재위 18년 중 14년은 등 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었으니, 안제의 친정 기간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는다.

 

안제는 어렸을 적에는 총명하다고 소문이 났지만, 즉위 후에는 공정하지 못한 일을 많이 했다. 황제로서의 교육을 받지 못해서 보고 들은 지식이 없어서 환관이 활개를 쳤다.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기강이 엉망이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때 관서 지방 출신으로 20여 년 동안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쳐 사람들로부터 관서의 공자(關西孔子)라고 칭송받던 양진(楊震: 54~124)이 동래 태수로 임명되었다. 그가 임지로 가는 길에 창읍(昌邑)이라는 고을을 지나다가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곳의 현령 왕밀(王密)은 양진이 형주의 감찰관을 지낼 때, 그를 아껴서 벼슬을 올려준 사람이었다.

 

현령 왕밀이 객사를 찾아와서 양진과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면서 품속에서 황금 10량을 꺼내 놓았다. 양진이 깜짝 놀라며 “나는 옛날 그대의 학식과 인품을 존경하여 기억하고 있는데,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을 잊은 것 같구려”하고 만류했다. 그러자, 그는 "태수님의 고결한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작은 성의를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뿐입니다“하고, '지금은 한밤중이고, 또 태수님과 저 두 사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진은 “아무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天知 地知 予知 我知)”

 

그 말을 들은 양밀은 얼굴을 붉히며, 황금을 거두고 물러갔다. 이것에 유래하여 사지(四知)란 고사가 널리 알려졌는데, 사지는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말이자 고고한 선비의 기개를 뜻하기도 한다. 이 고사는 후한서 양진 편에 나오지만, 십팔사략 동한 효안황제 편에도 실려 있다.

그 후 양진은 삼공의 하나인 태위가 되었는데, 환관 번풍(樊豊)과 황제 안제의 유모 왕성(王聖)이 황제의 권세를 빙자하여 양진에게 자신의 일가친척을 잘 대우해달라고 청탁했다. 양진이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안제에게 이들을 물리치라고 상소했다. 그러자 그들은 양진에 대한 나쁜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자, 어리석은 안제는 양진의 인수를 거두었다. 양진은 "임금의 은혜를 입은 신하가 간신들을 주살하지 못하고,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하늘을 우러러볼 것인가?" 하며, 스스로 독약을 먹고 자결했다.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초·중·고

대학

공무원

로스쿨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