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앤피뉴스 - [문학의 향기] 어느 해 가을

  • 구름많음충주4.6℃
  • 박무광주7.8℃
  • 구름많음흑산도8.8℃
  • 연무대전5.9℃
  • 맑음파주0.5℃
  • 구름조금해남8.9℃
  • 박무홍성5.9℃
  • 구름많음대관령1.6℃
  • 박무북부산9.8℃
  • 구름조금동두천3.4℃
  • 맑음진주5.6℃
  • 구름조금영광군8.5℃
  • 맑음영덕8.2℃
  • 맑음창원9.2℃
  • 구름조금세종5.4℃
  • 구름조금산청8.9℃
  • 맑음백령도4.3℃
  • 구름조금통영11.1℃
  • 구름조금순창군6.5℃
  • 구름조금이천4.7℃
  • 맑음서귀포14.4℃
  • 맑음부산9.8℃
  • 구름조금동해8.6℃
  • 맑음정읍6.6℃
  • 구름많음거창6.1℃
  • 구름조금의성4.7℃
  • 맑음남해10.6℃
  • 구름많음장수4.8℃
  • 구름많음속초6.2℃
  • 구름많음청송군4.1℃
  • 구름많음남원6.4℃
  • 구름조금춘천2.8℃
  • 박무북춘천2.2℃
  • 박무수원4.3℃
  • 구름조금순천6.3℃
  • 구름조금구미7.0℃
  • 구름조금추풍령5.6℃
  • 구름조금포항9.7℃
  • 맑음부안7.5℃
  • 구름많음원주3.9℃
  • 맑음영천8.6℃
  • 흐림울릉도8.1℃
  • 맑음합천5.0℃
  • 구름조금강진군8.9℃
  • 구름많음영월4.2℃
  • 맑음강화3.8℃
  • 맑음부여6.1℃
  • 구름조금고창군7.1℃
  • 구름조금봉화2.3℃
  • 맑음북강릉7.0℃
  • 맑음양산시9.6℃
  • 박무서울3.6℃
  • 흐림홍천3.1℃
  • 맑음양평4.8℃
  • 구름조금완도9.2℃
  • 맑음문경6.2℃
  • 구름많음고산11.7℃
  • 맑음서청주5.4℃
  • 맑음천안5.5℃
  • 맑음보성군9.4℃
  • 맑음의령군3.1℃
  • 맑음서산5.7℃
  • 맑음북창원9.3℃
  • 구름조금보령6.1℃
  • 구름조금강릉7.1℃
  • 맑음광양시9.4℃
  • 구름조금함양군7.9℃
  • 구름조금영주6.1℃
  • 맑음거제10.8℃
  • 구름많음진도군9.0℃
  • 구름많음철원1.6℃
  • 맑음상주6.9℃
  • 구름많음제천4.5℃
  • 구름조금임실5.6℃
  • 구름조금목포8.0℃
  • 맑음김해시7.9℃
  • 연무대구8.9℃
  • 맑음성산12.7℃
  • 구름많음인제3.0℃
  • 구름많음정선군3.3℃
  • 연무청주5.6℃
  • 구름조금고흥9.5℃
  • 흐림제주11.8℃
  • 맑음군산6.5℃
  • 구름조금경주시8.6℃
  • 구름조금보은5.6℃
  • 맑음울진8.5℃
  • 구름많음태백2.9℃
  • 박무인천3.0℃
  • 맑음전주6.2℃
  • 맑음밀양7.4℃
  • 구름조금고창7.6℃
  • 구름조금금산6.5℃
  • 맑음안동4.5℃
  • 맑음여수9.4℃
  • 연무울산10.0℃
  • 맑음장흥8.8℃

[문학의 향기] 어느 해 가을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3-02-07 10:48:40
  • -
  • +
  • 인쇄

 

어느 해 가을
 
▲ 이현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분다. 마름달 11월이 고추잠자리 등을 타고 왔다. 한 톨의 곡식도 천근의 무게로 익어 가는 계절, 내 몸의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한다. 가을볕 속에 시간은 너무 짧고 공간은 너무 깊은 것처럼 보인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은 인공 연못 위에 유화 한 폭을 그려놓았다. 보름달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에서 먼 그리움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산다는 것은 그리움을 쌓는 것이다. 홀로 떨어지는 잎새도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가을 낙엽처럼 인생도 과거와 추억이 쌓여 고즈넉한 현재가 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의 순환 앞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언제나 미완으로 남아있는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부끄럽다.
오돌토돌 점자처럼 박힌 보도블록 위를 걸어간다. 가로수 변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양옆으로 도열하듯 서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단풍잎들이 나풀나풀 떨어져 내린다. 나뭇잎 하나를 주워든다. 부챗살 같은 이파리를 팽그르르 돌려본다.
 
가을이 되면 못내 생각나는 이름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살짝 주근깨가 얹혀있던 친구. 다박머리가 어깨 위에 찰랑거리던 중학생 시절, 문예반에서 함께 활동하던 단짝 친구 추자秋子다.
어느 해의 늦가을 오후, 하얀 새러 복에 주름 잡힌 교복 치마를 입고 교문을 향해 걷고 있었을 때였다.
잘 말린 한 무더기 건초를 태우는 것 같은 구수한 냄새가 바람에 솔솔 묻혀왔다. 늦은 저녁 무렵 시골 길 둑을 걸어갈 때 두엄 냄새에 묻혀 피어오르던 정겨운 그 냄새…. 추자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두 눈이 마주쳤고 책가방을 덜렁거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 밑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날 우린 국어 시간에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란 수필을 공부했고 거의 여러 단락의 문장을 줄줄 외우다시피 심취해 있었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 어느 때까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심오한 철학적 사고를 주는 문장이다.
 
떠꺼머리 노총각이었던 호랑이 체육 선생님이 쇠스랑으로 부지런히 낙엽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빛바랜 플라타너스 잎들이 동그랗게 회오리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이리저리 쏠려 다녔다. 어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린 교복 치마에 수북이 낙엽을 끌어 담았다. 가는 연기가 푸석푸석 새 나오는 가랑잎 위에 하르르 쏟아 부었다. 불꽃이 사그라질듯하면 작은 나뭇가지를 쑤석거려 후우! 하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불꽃은 금세 화들짝 놀라는 아이처럼 타닥타닥 맹렬히 타올랐다.
 
 
 
또 한 차례 바람이 불자 은행잎들이 후드득쏟아진다. 십일월의 금빛 노을 속에서 부서져 내리는 조락凋落의 아름다움. 떨어지는 것의 슬픔이 이처럼 찬란할 수가 있을까?
지난 시간들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떼어 내도 떼어 내도 자꾸만 분열하는 아메바처럼 언제나 실패하고 미완인 내 모습이 싫어서 왜 나만 이래야 하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은행나무는 내게 조곤조곤 말한다.
뇌성벽력 치던 한 여름 밤 폭우 속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잔뿌리를 거머쥐던 완강함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한낮의 뙤약볕에 하아! 하아! 뜨거운 숨 몰아쉬며 수액을 감아올리던 많은 날의 인내를. 진눈깨비 몰아치던 혹한에도 새봄을 노래하던 뿌리 깊은 나무의 시간들을! 生으로 그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지 않고 순리에 몸을 맡기며 묵묵히 견뎌온 은행나무의 한 생을 보라! 인간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순행하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지 않은가.
가슴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욕망의 등짐을 잠시 은행나무 밑에 부려놓는다. 약동하는 푸른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이제 스스로 거름이 되어갈 은행나무의 소멸하는 조용한 슬픔을 바라보고 있다. 비우고 거둬낸 자에게서만 느끼는 건강한 향기다.
 
가을이 부려놓은 낙엽 소리를 듣는다. 겸손한 자세로 물든 낙엽을 바라보면서 삶의 소박한 진리를 알아낸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오늘의 내 모습도 세심히 살펴보게 되며 다른 이의 삶에 대한 관심도 생겨지지 않을까.
누구나 가슴에 지니고 사는 그리움, 산다는 것은 그리움을 쌓는 일이 아닐까. 낙엽 태우는 냄새 속에 묻어나는 잊을 수 없는 이름 추자秋子와 함께 가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긴 내 그림자도 따라나선다.
 
이현실 작가
한국예총「예술세계」수필 등단(2003) 「미래시학」시 등단
시집「꽃지에 물들다」「소리계단」「챗-GPT에 시를 쓰지 않는 이유」
수필집 「그가 나를 불렀다」외 1권. 공저「3인의 칸타빌레」외 100여 권
현 계간「미래시학」주간. 도서출판「지성의 샘」주간
한국농촌문학상. 국가보훈콘텐츠 공모 수상. 둔촌이집문학상 외 다수

[저작권자ⓒ 피앤피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ISSUE

뉴스댓글 >

많이 본 뉴스

초·중·고

대학

공무원

로스쿨

자격증

취업

오피니언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