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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신(神)의 이름으로 갈린 두 운명 : 왕권신수설과 천부인권론의 대척점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6-03-10 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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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이름으로 갈린 두 운명 : 왕권신수설과 천부인권론의 대척점”




 

▲최창호 변호사
Ⅰ. 역사의 흐름 속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느냐는 질문은 인류가 마주한 지 가장 오래된 숙제 중 하나였고, 지금도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인류는 전혀 다른 두 시대를 열기 위해 동일한 '초월적 존재'인 신(神)의 권위를 차용한 바 있다. 바로 절대왕정의 기둥이었던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Kings)'과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천부인권론(Natural Rights)'이다. 두 이론은 모두 "권력의 근원이 실정법 너머의 초월적 근거에 있다"라는 형식적 논리를 공유하는 형식을 취하지, 그 지향점과 결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Ⅱ. 왕권신수설: 군주의 권위, 하늘이 내린 절대성
16세기에서 17세기 유럽, 봉건제가 무너지고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에 왕권신수설은 절대군주의 가장 강력한 통치 무기가 되었다. 장 보댕과 제임스 1세 등에 의해 정립된 이 이론의 핵심은 국왕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임명되며, 따라서 지상의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은 국왕에게 '지배할 권리'를 부여한 절대적 수여자에 해당한다. 백성은 왕의 통치에 불만이 있더라도 저항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왕의 명령이 곧 신의 뜻과 결부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제정치를 정당화하고 국왕의 권력을 무소불위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왕권신수설 아래에서 인간은 '존엄한 주체'가 아닌, 통치의 대상인 '신민(臣民)'에 불과했다.

Ⅲ. 천부인권론: 모든 개인에게 깃든 신성한 권리
반면, 17세기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등장한 천부인권론은 신의 역할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존 로크 등으로 대표되는 이 이론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창조주로부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권리를 부여받았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서 신은 특정 권력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존엄성'을 심어준 창조주이다. 권능의 성격 역시 '통치권'에서 '자유권'으로 바뀐다. 국가나 국왕은 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계약을 통해 잠시 권한을 위임한 존재일 뿐이다. 만약 국가가 이 신성한 권리를 침해한다면, 시민은 저항권을 행사하여 정부를 교체할 수 있다는 혁명적 논리가 여기서 탄생한다.

Ⅳ. 형식적 유사성과 실질적 대척점
두 이론이 언뜻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정당성의 외주화'로 인한 것이다. 통치권이나 인권이 인간 사회 내부의 합의가 아니라, 감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초월적 근거를 차용함으로써 절대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수혜자를 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다. 왕권신수설은 단 한 명의 국왕을 위해 신을 호출했지만, 천부인권론은 이름 없는 수많은 개인을 위해 신을 호출했다. 전자가 '지배의 정당성'을 위해 하늘을 바라보았다면, 후자는 '해방의 정당성'을 위해 하늘을 바라본 셈이다. 이러한 논리적 전환은 결국 절대왕정의 붕괴와 근대 시민 혁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Ⅴ. 현대적 함의: 헌법재판과 저항권의 뿌리
1.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왕권신수설을 떠받들지 않고 있지만, 천부인권론은 현대 헌법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조항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 제도는 실정법이 인권이라는 초월적 가치를 침해할 때 이를 무효화함으로써 천부인권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구현한다. 현재 우리의 헌법도 존 로크의 사상이 상당히 투영되어 있는 상태라 볼 수 있다.

2. 역설적이게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조차 '역사 속에서 스스로 수정'되거나 '헌법개정권력'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 과거 미국 대법원이 흑인은 시민이 아니라고 판결했던 '드레드 스콧(Dred Scott)' 사건이 수정헌법 제14조를 통해 폐기되었고, '브라운 판결'이 '플레시 판결'의 분리 평등 논리를 뒤집었듯, 인권의 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과 해석을 통해 진화한다.

3. 결론적으로 왕권신수설과 천부인권론의 역사는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인류의 긴 정치철학의 여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신의 이름을 빌려 군림하려 했던 시대는 저물었지만,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가치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견고한 법적·윤리적 지탱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의 기원에 대한 연구와 헌법의 수호자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초월적 권위마저도 개인의 존엄으로 돌려놓으려 했던 치열한 사유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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