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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변호사의 법조단상] 입양인의 정체성 회복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 가려진 뿌리, 지워진 존재

피앤피뉴스 / 기사승인 : 2026-07-13 1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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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의 정체성 회복과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 가려진 뿌리, 지워진 존재

 

 

 


 

▲최창호 변호사

1. 서

오랫동안 입양은 아동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는 '축복'이자 온정주의적 복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아동이 새로운 울타리 안에서 안정되게 성장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 이면에는 입양이라는 제도적 선택이 아동의 삶에 평생토록 남기는 거대한 정신적, 법적 파편들이 가려져 있었다. 입양은 단순히 '가족을 바꾸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한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뿌리와 단절되고, 자신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실하는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온정의 프레임을 넘어, 입양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고통을 헌법적 권리의 침해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2.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권리

입양인이 성장 과정과 성인기에 직면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박탈당했다는 점이다. 생모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유전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왜 친부모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인간으로서 자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주춧돌이다. 그러나 현행 입양 체계와 사회적 현실 속에서 많은 입양인은 자신의 출생 기록에 접근하는 데 심각한 장벽을 마주한다. 과거의 무분별한 해외 입양 과정에서 기록이 조작되거나 소실된 경우는 허다하며, 국내 입양의 경우에도 친부모의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하에 입양인의 알 권리가 철저히 배제되곤 한다.

자신의 시작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삶의 전반부에 거대한 공백을 둔 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러한 뿌리와의 단절은 깊은 실존적 불안감과 소외감을 낳고, 나아가 심각한 정체성 상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입양인이 자신의 친부모를 알고 출생의 비밀을 풀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권리'는 결코 사치스러운 요구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개인의 본질적이고 독자적인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인간의 존엄성 실현을 위해 개인의 인격발현권과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자아의 역사적 연속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확립하는 것은 인격권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따라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자 하는 '출생을 알 권리'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천부적인 권리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3.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역할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0조 제2문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극적 의무를 넘어, 제3자에 의한 침해나 제도적 결함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위협받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의미한다.

과거 대한민국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사법(私法)상의 영역인 민간 기관에 입양 절차를 과도하게 위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권리와 정체성 보존은 국가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났고, 수많은 아동이 자신의 국가적, 문화적, 가족적 배경을 박탈당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국가가 아동의 출생과 성장을 공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민간의 손에 방치한 것은, 명백히 기본권 보호 의무를 해태한 실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향후 국가의 책무

따라서 국가가 이제라도 기본권 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입양 절차 전반에 대한 '공적 책임성'을 전면 강화해야 하는 향후의 책무를 안고 있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취지에 발맞추어, 입양은 민간 알선 기관의 주도가 아닌 국가와 지자체의 엄격한 관리·감독하에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완전히 안착시켜야 한다. 

 

다만, 이러한 공적 책임성의 강화가 행정 편의주의적 규제나 심사의 무기한 장기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입양이 지체되거나 사실상 거부되는 부작용을 낳아서는 결코 안 된다. 아동이 신속하게 안정된 가정환경을 제공받을 권리 역시 국가가 보호해야 할 핵심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공적 심사 인력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절차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며, ‘가정 보호’라는 입양 본연의 목적이 규제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유연하고 효율적인 패스트트랙(Fast-track) 시스템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의 책무는 입양인의 '출생 정보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제도의 과감한 개선이다. 친부모의 사생활 비밀 보장과 입양인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국가가 단순히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조정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친부모의 신원을 익명으로 보호하더라도 입양인이 자신의 의료 기록이나 유전적 정보, 입양 배경 등의 비식별 정보를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세밀한 법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과거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진상조사를 철저히 이행하고, 성인이 된 입양인이 정체성 회복을 요구할 때 이를 원스톱으로 중재하고 정서적·법적으로 지원할 공적 전담 기구를 상설화하여 운영해야 할 구체적인 책무가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3기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진화위 3기는 과거의 아픔을 투명하게 직시하고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진정한 화합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헌법적 정의의 실현 장이 될 것이다.



5. 결

입양은 한 아동의 인생 전체를 재구성하는 중대한 사법적·행정적 처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입양을 '가정이 필요한 아동에게 베푸는 시혜'로만 바라보느라, 그 과정에서 지워지고 가려진 입양인의 권리와 눈물을 외면해 왔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입양인들의 절규는 국가를 향해 헌법적 책무를 다하라는 준엄한 요구이다. 아동이 태어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가, 그 이후의 정체성 회복 과정마저 방관한다면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국가의 이러한 공적 책무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정체성 보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정이 필요한 아동에게 지체 없이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적 지원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 역시 국가가 동등하게 짊어져야 할 헌법적 의무이다. 절차의 엄격함이 도리어 아동의 가정을 가질 권리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제라도 국가는 입양인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권리를 확고히 보장함과 동시에 현장의 입양 지체 문제를 유연하게 보완하는 실효성 있는 공적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오랜 세월 지워졌던 입양인의 온전한 삶과, 지금 이 순간도 따뜻한 품을 기다리는 아동 모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최창호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군법무관을 거쳐 1995년에 검사로 임용되어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송무, 공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한 후 법무부 국가송무과장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련 국가 송무를 총괄하면서 주요 헌법재판, 행정재판 및 국가소송 사건을 통할하고, 정부법무공단의 발족에 기여했다. 미국과의 SOFA 협상에 참여한 바 있으며, 항고, 재기수사명령 등 고검 사건과 중요경제범죄 등 다수의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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